
"로빈을 내가 거쳐간 작품들이랑 같게 부를 순 없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꾼 존재니까. ...뮤즈?아니야. 그것도 거리가 느껴져. 그래서 열심히 찾아다녔어. ...내 마음을 담을 만한 단어를, 로빈에게 내가 무엇을 말하면 좋을지를 말야."
손의 위치를 바꾸어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살포시 눌러 보았다. 작은 간지러움에서 시작했던 감각은 점점 커져 하나의 고동이 되었고, 귓가를 울릴 정도로 컸던 그 소리는 오늘 밤 비눗방울이 터지듯 힘없이 터져내렸다. 이제 이 가슴 속엔 온기밖에 남아있지 않다. 너무나 따뜻하고 몽실해서, 아마도 평생 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문득 시선을 네개로 돌렸다. 네 손을 잡아 제 뺨께로 이끌었다. 어루어 달라는 듯, 달을 타고 밤을 걸어 나긋하게 다가온 한 마리 고양이처럼.
"찾아 헤매다 보니, 내가 평생 말하지 못했던 말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았어. 사실은...지금도 기쁘면서도 두려워."
제겐 저주와도 같았던 말이었다. 이제 와서 할 수 있을까. 자격이 없다고 늘 여겼었는데, 저는 사람의 탈을 쓴 어느 모방꾼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제게 네가 힘을 주었다. 저주를 풀어낼 수 있는 주문을 알려주었다. 너도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다. 언제든 네 이름을 부르면 세상이 밝아졌다. 그래, 하여 너는 제게 있어 빛이다. 차마 눈부셔서 이 순간에도 오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자 속눈썹이 눈동자를 반쯤 가려 주었다.
"...하지만, 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로빈이 내게 그래도 된다고 해 줬으니까. 나도, 다가가고 싶어. 로빈이 내게 다가와주는 만큼,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그 이상으로, 더 가까워지고 싶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듯, 기다림에도 늘 끝은 존재한다. 사람을 벙어리로 만들던 트라우마의 굴레를 비로소 전부 깨냈다. 걸어갈 일만 남았는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속상했다. 급한 대로 손이라도 뻗으며 너를 찾은 지 몇 개월. 비로소 걸을 수 있게 된 지금, 저는 네게 제일 먼저 뛰어가고 싶었다. 밤부터 온갖 색으로 일렁이던 감정은 끝내 저를 울게 했다. 입은 분명 웃고 있는데, 분명히 기쁜데. 너무 기뻐서 우는 것인지 혹은 그간의 고단함이 밀려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몰라서 하염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참을 겨를도 없었다. 소리 없이, 비로소 사람에 한없이 가까워지게 된 인형이 따뜻한 눈물을 도륵도륵 흘리며 너를 바라보았고, 입을 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