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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자신을 고독에 잠겨 죽게 하려던, 그러나 미수에 그쳤던 저에게 단지 눈치챘다는 이유만으로 허물도 없이 온기를 내어주었다. 저와 같이 있는 것이 좋다며 웃어주었다. 자신의 상처를 보고도 비웃거나 동정하지 않았다. '일리야는 일리야일 뿐이야.' 그는 오롯이 저 자체만을 꿰뚫어 보고 포용했다. 아주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해 사랑을 알려 주겠다고 맹세해 주었다. 너는 스스로를 한낱 나약한 존재일 뿐이라 하지만, 제가 보기엔, 네가 제게 보여줬던 행보로만 보더라도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한동안 불안했던 건지도 몰랐다. 너무나 꿈같이, 제 상상을 뛰어넘는 이상적인 사람을 만나 같이 살기까지 하게 됐다는 사실이, 마치 눈 뜨면 사라질 듯한 꿈처럼 느껴져서.

  믿어도 좋을까. 적어도 하루에 다섯 번쯤은 생각했던 것 같다. 불안과 어둠을 이해해 주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너는 제가 흔들리거나 의심할 적마다 그저 지켜보면 된다고 했었다. 아직 믿지 못하겠다면 언제든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여서, 제가 믿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그때부터였을까. 메마른 감정에 단비가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촉촉히 젖은 대지는 결코 새싹을 해칠 것 같지 않았다. 어렴풋이 그 부드러움을 '호감'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따뜻하고도 간지러운 감촉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흘렀다. 던전을 클리어하고, 짧게나마 휴식 겸 투병생활을 했고, 전부 마무리한 후에 프랑스에서 다시 보자고 둘만의 기약을 했다. 그 때쯤부턴 네가 분명 자신이 평생 찾아 헤매던 것을 주리라는 확신이 섰다. 그러나, 그런데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여즉 주저하기만 했다. 자신의 감정을 정의하지 못한 채, 아니, 어쩌면 차마 인정하기 두려워하는 채로. 다시 더 긴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완연히 느낄 수 있었다. 겨울이 가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비단 시간만이 약은 아니었으니 영구동토에 봄이 돌아오기까진 참 많은 세월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어릴 적 기도에 대한 응답처럼, 어느 빛을 가진 별이 저를 굽어본 덕에 비로소 기나긴 잠에서 눈을 떴다. 이젠 괜찮아. 괜찮은 것 같아. 곁에 두어도, 거머쥐어도, 말해봐도 괜찮을 것 같아. 네게 조금 더, 온전히 닿으려면 이젠 저는 '그 단어'를 연습해야만 했다. 어쩌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기다린다라. 기다리고 있던 이는 과연 누구였을까. 저일까 혹은 너일까. 어쩌면 둘 다 하루하루 남몰래 손꼽고 있었던지도 몰랐다. 아. 이제는 초조함이 없다. 입술이 이내 호선을 그었다. 이게 나쁘지 않다는 것이 싫고도 좋았다. 예술의 가장 좋은 소재가 왜 사랑인지 비로소 알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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